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충남 서천 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만났다. 지난 21일 대통령실이 한 위원장의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한 지 이틀 만이다. 이날 만남으로 격화되던 양측 갈등은 일단 소강상태에 들어갔다. 다만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, 김경율 비대위원 거취 등과 관련된 이견이 여전해 불씨는 남아 있다.
오후 1시께 현장에 도착한 한 위원장은 30분가량 차 안에서 대기했다. 윤 대통령 도착과 함께 밖으로 나온 한 위원장은 허리를 크게 숙여 인사했다.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과 악수한 뒤 어깨를 가볍게 쳐 친근감을 나타냈다. 나란히 화재 사고 브리핑을 들은 두 사람은 현장도 함께 돌아봤다. 이후 윤 대통령의 제안으로 전용열차에 나란히 앉아 서울로 올라왔다. 한 위원장이 “열차에 제 자리 있습니까”라고 묻자, 윤 대통령은 “어, 같이 올라가자”고 답했다.
서울역에서 기자들과 만난 한 위원장은 “대통령님에 대한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. 변함이 전혀 없다”며 “대통령이나 저나 민생을 챙기고 국민과 이 나라를 잘되게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그거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”고 말했다. 윤 대통령과의 대화에 대해서는 “민생 지원에 관한 얘기를 서로 잘 나눴다”고 전했다.
이날 만남은 “더 이상의 갈등 확대는 막아야 한다”는 기류가 여권 내에서 빠르게 번져 성사됐다. 대통령실에서는 전날 “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후배”라는 한 위원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평가가 외부에 공개되는 등 유화론이 확대됐다. 양측의 갈등이 총선 패배와 국정 운영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따른 것이다.
이날 친윤(친윤석열)계도 한 위원장에 대한 공격을 자제했다. 21일 한 위원장에 대한 공격에 앞장섰던 이용 의원은 23일로 계획했던 ‘현안 기자회견’을 취소했다. 친윤 핵심인 이철규 의원도 KBS 라디오에 나가 “분위기로 볼 때 소통 과정에 조금씩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”며 “오해는 금방 풀리고 국민과 당원을 생각하면 긍정적으로 잘 수습되고 봉합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”고 말했다.
갈등의 근본 원인인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과 관련한 양측의 견해차는 여전하다. 대통령실이 비대위원장직 사퇴 요구의 이유로 내걸었던 공천 관련 불협화음도 계속 나오고 있다. 한 위원장은 “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 계획 발표는 독자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당 지도부와 협의를 거친 사안”이라는 입장이지만, 친윤계와 중진 의원들은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.
여권 한 고위 관계자는 “지도부 사이에 구두 합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‘시스템에 의한 공정’과는 거리가 있다”며 “‘특권 공천’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으려면 절차적 민주주의를 존중해야 할 것”이라고 지적했다. 이에 따라 친윤계를 중심으로 김 비대위원의 비대위원직 사퇴나 총선 불출마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.
노경목/도병욱/정소람 기자 autonomy@hankyung.com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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